[민중의소리 5.25]월급 110만원으로 두 딸 키워…“딸이 장래희망 없다고 해 속상”

[저임금 노동자 이야기] 홈플러스 의류매장 노동자 장경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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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화(48) 씨는 마트 노동자다. 그는 홈플러스 동수원점 의류매장에서 일한다. 딸을 키우는 가장인 그가 한 달을 일하고 버는 돈은 120만원이 약간 넘는다. 건강보험료,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을 원천징수하고 그의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평균 110만원 가량이다. 2015년 최저임금 시급 558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16만6220원이다. 그러니까 장 씨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 셈이다.

임금 노동자의 절반은 월급 200만원 미만이라니…

장 씨의 삶이 팍팍할 것이라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월급 110만원으로 딸을 키우면서 가정을 꾸리는 건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교육비, 월세, 식비, 교통비, 휴대폰요금, 도시가스·전기·수도요금, 그외 세금 등등. 아끼고 아껴서 꼭 필요한 것만 지출해도 월급 110만원에 육박한다.

그래서 장 씨는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길 바란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그의 월급도 오르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도는 1986년 법이 제정돼 198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첫번째 목적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장 씨의 생활은 어떨까?

식비 22만원, 교통비 6만원, 자녀 교육비 및 용돈 30만원…

가계부의 숫자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장 씨의 생활이 궁금했다. 그래서 4월 말의 어느날,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홈플러스 동수원점 앞에서 장 씨를 만났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열차 안에서 열어본 스마트폰 포털사이트 앱에서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뉴스 제목은 이랬다. ‘임금노동자 절반은 월 200만원 못 받아’. 월급 200만원을 못 받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나 된다니, 제목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는 통계청이 실시한 ‘2014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 수준인 49.5%가 2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느낌이 확 오진 않는다. 숫자로 다시 풀어보면 느낌이 좀 달라진다. 위 통계청 조사에서 전체 취업자 중 임금노동자는 1천894만5천명이다. 이중 1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12.5%인데, 인원으로 따지면 236만8125명이다. 100만원에서 200만원 미만을 버는 임금노동자는 37.0%로 인원은 700만9650명이다. 이들을 모두 더한, 즉 200만원 미만을 버는 임금노동자는 49.5%로, 937만7775명이다. 임금노동자 10명이 모이면 1명은 100만원 미만을 벌고, 5명은 200만원 미만을 번다는 얘기다. 장 씨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주변 상당수 노동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저도 전문대 졸업했는데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충북 제천서 피자 가게 운영, IMF 여파로 가게 망하고
두 딸과 먹고 살기 위해, 공장 등서 일하다 마트 취업

“어디서 봬야 하나요? 커피숍에서 봬야 하나요? 그럼, 저희 매장 건너편에 커피숍이 하나 있습니다.” 장 씨와 만나기로 한 날은 장 씨가 ‘마감조’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여느 대형마트들이 그렇듯, 장 씨가 일하는 홈플러스 동수원점도 ‘아침조'(오전 9시~오후 6시), ‘중간조'(오후 1시~ 밤 10시), ‘마감조(오후 3시~밤 12시)로 근무시간이 나눠져 있다. 휴무일을 제외하고 한 달에 20일 가량을 일하는데 장 씨의 경우는 아침조 10번, 중간조 2번, 마감조로 8번 가량 일을 한다고 한다. 마감조는 심야수당과 택시비가 지급되기 때문에 마감조를 많이 하면 급여를 몇 만원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장 씨는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도 전문대 졸업했거든요. 제가 이렇게 될 줄 저도 몰랐어요.” 장 씨는 결혼 전 시청에서 3년 동안 일했다. “그때가 호적을 한문에서 한글로 바꿀때였어요. 타자 칠 사람이 필요했고, 일용직으로 시청에서 3년간 일했어요. 결혼을 하면서 그만뒀어요.”

결혼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충북 제천시로 내려가 남편과 함께 피자 가게를 열었다. “장사가 잘 됐어요. 대출금도 거의 갚아나갈 때쯤 IMF가 터졌어요.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데…바로 접었어야 하는데 미련이 있어서 1년을 더 하다가 결국 말아 먹었어요.”

남편은 재기를 하려고 이런 저런 사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잘 안 됐고, 결국 2006년경 이혼을 했다. 두 딸과 함께 반지하방에 거처를 마련했다. 먹고 살기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취업정보지를 뒤져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찾아갔다.

“2교대로 일했는데 월급 130만원을 받았어요. 야간조는 밤을 새서 일하는데 남땜 냄새와 웅웅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되게 어지러웠어요. 결국 4개월 일하고 그만뒀어요.”

핸드폰 관련 부품을 만드는 공장도 찾아갔다. “제 또래 아줌마들이 많아서 너무 놀랐어요. 다들 그렇게 돈을 벌러 나오는 걸 보고…아줌마들이 라인을 따라 쭉 앉아서 일하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낯선데 빨리 빨리 하라고 하고, 화장실도 시간에 맞춰서 벨이 울리면 갈 수 있어요. 한꺼번에 화장실에 가다 보니까 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이렇게 살아야 하는건지, 밥 맛도 너무 이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함을 느끼다 취직한 곳이 마트다. 장 씨는 2008년 홈플러스 동수원점 의류 협력업체 직원으로 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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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 씨가 받은 첫 월급은 83만원이었다. 일을 하다 장 씨 상급자인 매니저가 그만두면서 장 씨에게 매니저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매니저는 4명의 직원을 관리하면서 일을 하는데 매출 목표를 달성하거나 초과 달성하면 그만큼 월급을 더 챙겨갈 수 있다. 장 씨는 매니저를 하면서 월 평균 200만원의 월급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홈플러스가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서 월급이 반토막이 났다. 홈플러스 등 유통업 고용구조는 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간접고용 입점협력업체 직원(개인사업자) 등의 형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간접고용의 경우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직접고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직접고용으로 전환되고 2011년 말에 받은 월급은 90만원이었다. 그후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장 씨의 시급도 조금 올라 현재는 평균 110만원(실수령액)의 월급을 받고 있다.

월급 110만원은 정당한 대가일까?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갈 수는 있을까?

장 씨는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는 것일까? 110만원의 월급으로 가정을 정상적으로 꾸려갈 수는 있을까?

장 씨는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둘째 딸과 살고 있다. 큰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해서 분가를 했다. 장 씨의 가계부를 한 번 보자.

-가스·수도·전기 요금 등 세금 10만원 (겨울에는 10만원이 추가된다.)
-월세 10만8천원
-핸드폰요금 8만원(2명)
-식비 22만원
-교통비 6만원
-병원비 8만원
-학비, 용돈 30만원
-보험 12만5천원
-사교육비 없음

=총 고정지출 107만3천원.

알뜰하게 살면서 수입과 지출을 겨우 맞춰가고는 있지만 월급 110만원은 가정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장 씨는 마감조 근무를 끝내고 귀가한 장마철의 어느 날, 반지하방에 물이 차서 딸들 학교갈 채비를 해서 찜질방에 가서 잤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여러서부터 캐피털사에서 아빠를 찾는 전화를 받았던 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빚만 없으면 된다고 엄마가 같이 있으니 좋다”고 했다. 장 씨는 딸들을 위해서라도 대출과 카드 돌려 막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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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줄어들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게 무엇일까? 먹는 것과 입는 것이다.

“옷은 거의 안 사고, 먹는 것을 줄였죠. 전에는 아토피가 있는 둘째 딸을 위해 무농약 야채도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라면과 식빵, 계란이 주식이 돼 버렸어요. 마트 의류 매장에서 옷을 진열하는 일을 하면서도 3만원대의 옷은 살 생각을 못해요. 시즌이 끝날 때 가격이 가장 떨어졌을 때 남아 있는 옷 중에서 필요한 옷을 고르는 정도지요. 저와 제 딸에게는 5900원~9900원이 적당한 옷 값예요. 작년 여름에 딸 안경에 금이 갔는데 안경도 비싸서 이번에 해줬어요. 저는 볼때 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딸 아이가 ‘괜찮아요 잘 보여요’라고 그래서 그런 가보다 했어요. 저도 무심한 엄마죠.”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하고 싶은 것 못 하고…마음 아픈 사연이야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장 씨는 아이한테도 미안하다.

“가정적으로도 어렵고 저도 일을 하느라 나가 있고 해서 딸이 아주 긴 사춘기를 보냈어요. 아무 것도 시켜준 게 없는 것 같아서 아이한테 미안해요. 내가 못 해줘서 꿈을 꿀 수 있는 게 확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이가 장래 희망이 없다고 하는 게 가장 속상했어요.”

미국 다음으로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나라, 대한민국
대형마트는 대표적 여성 저임금 직종, 약 50만명 추산
“큰 꿈은 없어요, 아이에게 좋은 재료로 멋진 밥상 차려주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저임금 노동자(중위임금의 3분의2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나라다. 2012년 기준으로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전체 노동자의 25.1%나 된다. 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남성 보다는 여성이 훨씬 많다. 여성 저임금의 대표적 직종이 마트 분야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마트 노동자들은 대략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내 집 마련? 빚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 약간의 저축? 아니 당장 눈 앞의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이어서 이 모든 게 사치는 아닐까?

“집을 장만하고 싶다던가 하는 큰 꿈은 없어요. 아이에게 돈 걱정없이 좋은 재료로 장을 봐서 멋진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요. 두 딸을 키우면서 우유와 씨리얼, 빵과 라면, 싸구려 김밥으로 집밥을 대체하곤 했거든요. 솔직히 굶기지만 말자고 다짐을 할 정도였어요.”

‘딸을 위한 멋진 밥상’, 참 소박한 희망사항이다. 장 씨의 희망사항이 이뤄지려면 그의 월급이 올라야 하고,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그의 월급이 오르려면,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 2016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진행중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최저임금 심의는 두 번 있었는데, 각각 7.2%, 7.1% 올랐다. 세번째 심의를 하는 올해는 얼마나 오를까? 예년 평균대로 7% 수준으로 인상될까? 만약 7%가 오른다면 최저임금은 시급 390원 오른 5970원이 된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희망을 키우기에 시급 390원 인상은 여전히 부족한 액수로 느껴진다. 노동계는 2016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원(월 209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기사 원문 읽기-> http://goo.gl/0X4P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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