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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6 07.09.43

안녕하십니까. 홈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여기 한 여성이 있습니다.
출근하면 하루 종일 매장과 매장크기만큼 넓은 창고인 후방을 오갑니다. 빈 몸이 아니라 십 몇키로 이십키로 넘는 물건이 가득 실린 카트나 엘카를 끌고 하루 종일 걷고 또 걷습니다. 상품을 찾고, 진열하고 또 진열합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의 여유도 공간의 여유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일하면 온몸이 파김치가 됩니다.

밤 12시가 다된 늦은 시간 퇴근해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밥을 차려내고, 아이들 학교 보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오늘은 오픈조가 아니라 큰딸 등교시간에 함께 집을 나섭니다. 아이는 자신의 등굣길에 따라나선 엄마를 불편해 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겐 사춘기가 다된 딸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15분입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출근해서 무거운 물건을 도맡아 옮기고 진열합니다. 퇴근시간이 다 되었지만 아무도 퇴근하라는 말은 없고 업무지시는 계속됩니다.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면접기회를 가지려면, 제시간에 퇴근하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습니다. 오직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해야 합니다. 벌써 몇 년째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 몇 년 사이 이전의 친구들도 연락이 끊기고, 가족친지들의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아닌 다른 생활에서도 활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있는 휴무날도 멍하니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주말에 쉬는 건 하늘에 별따기이고, 오픈과 마감이 뒤섞인 스케줄은 몸상태를 물먹은 솜처럼 만들어버립니다. 하루 온 종일 잠을 자고 싶을 뿐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연애안하냐?”, “결혼도 해야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시간도 체력도 주머니사정도 허락지 않는 이 상황에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여기 한 여성이 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오픈조인 날은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길 수 가 없습니다. 마감조인 날은 퇴근하면 아이들은 쌔근쌔근 잠들어 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사는데 이렇게 사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가끔 스치듯 지나갑니다.

오늘은 진상고객 때문에 하루를 망쳤습니다.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막무가내로 소리칩니다. 서랍을 열어 두통약을 먹고 한숨 돌려보지만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서럽고 더러워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동료가 잠시 메우고 있는 저의 자리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두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큰 숨을 한번 내쉬고 서둘러 다음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여기 한 청년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면접을 보고 대기업인 이 회사에 취업했습니다.매장크기 만큼 넓은 창고를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합니다. 출근시간은 있지만 정해진 퇴근시간은 없는 곳 입니다. 동료가 집안일로 연차휴가라도 가면, 그런 날은 풀 근무를 뜁니다.
“넌 정규직이잖아”라는 한마디에 퇴근시간도 없이 일 합니다. 업무를 전달하는 일, 사람을 구해오는 일, 특판을 나가고, 청소를 하고, 페인트칠까지 하고, 이 부서로 지원가고 저 점포로 지원가고, 많지도 않은 급여에 온갖 일들은 다 주어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쉬는 날에도 안절부절 하게 되고, 퇴근 후에도 전화기가 울리면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차라리 점포에 출근해 일하는 시간이 더 편하게 여겨지는 이 증상은 일중독 증상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툭하면 VIP방문이다 행사다 하면서 쉬는 날도 출근하는 선임자들을 보면 몇 년이 흘러도 이 신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로 홈플러스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 수억 원 어치의 상품이 마트 노동자인 우리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져서 팔려나갑니다.
우리의 일터인 홈플러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노동, 최저임금과 별 차이 없는 낮은 급여, 고객을 응대하며 항상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의 힘겨움까지 참아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힘들어 죽을 것 같다”와 “아이구 지겨워”입니다. 홈플러스가 생기고 100개가 넘는 점포로 늘어난 지난 14년간 우리들은 이렇게 일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은 우리 홈플러스 노동자의 이야기를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형마트에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듯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이런 환경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깨끗하게 정리된 매장, 붐비는 사람들, ‘1+1’, 값싼 행사상품들>이 먼저 떠오르는 그곳 대형마트 홈플러스에 일하는 사람들도 괜찮은 환경에서 일하고 대우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노동조합과 함께 우리의 권리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홈플러스 노동자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씩 바로잡고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일 할만 한곳, 다닐 만한 곳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노동조합과 함께 홈플러스의 불법행위를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동조합이 없었던 이곳 홈플러스에서는 관행으로 굳어진 불법, 위법 사례,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장근무를 시키고 연장수당을 주지 않습니다.”
“주당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연장근무가 수십 시간 씩 벌어지고 있습니다.”
“휴무일에도 전화해서 업무지시를 하고, 출근을 강요합니다.”
“고객의 항의를 개별직원이 감당하게 하고, 모욕적 상황에 처해도 회사는 어쩔 수 없다 합니다.”
“성심껏 고객응대를 했지만 인사 매뉴얼과 똑같이 하지 않는다고 핀잔 받고 추가 교육을 받습니다.”
“회사임원이 방문한다고 전 직원이 며칠간 청소에 동원됩니다.”
“최저임금과 별 차이 없는 급여가 한 달 임금으로 주어집니다.”
“협력업체 파견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온갖 다른 업무도 강요합니다.”
“상급자가 욕설과 폭언을 일삼고,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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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불법이거나 위법이 분명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지난 14년의 시간동안 반복되어 왔고, 관행으로 굳어져 왔습니다.노동자인 우리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홈플러스의 불법행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홈플러스라는 기업을 위해서도 불법행위, 위법행위는 즉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제 홈플러스 노동조합으로 힘을 모아 바로잡아 나갑시다. 노동자인 우리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고
홈플러스에 만연한 불법과 위법을 바로 잡는 것을 시작으로 다닐 만한 직장, 부끄럽지 않은 직장,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일한만큼 대우받는 직장, 노동자가 존중받는 직장, 노동자가 주인 되는 일터, 노동자가 주인 되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노동조합으로 힘을 모읍시다.
함께 하면 더 빨리 바로잡고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힘이 모이는 만큼 바로잡고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쳐서 하나씩 바꿔 나갑시다.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요구하고, 되찾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칩시다.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 일터의 주인으로, 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한 권리를 행사합시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고 찾아나갑시다.

2013년 3월 27일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 김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