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 달에 100만원 받고 살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을 받는다면 당장 고개부터 젓게 된다.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자조 섞인 한숨도 나올 법하다. 여기에 갓난아이들까지 키우고 있다면 눈앞은 더욱 캄캄하다. 기저귀값, 분유값만 해도 100만원이라는 금액은 우스워진다. 아이들이 머리가 크더라도 학원비, 교육비가 블랙홀이다. 집안의 누군가 아프기라도 하면 ‘감당 불가’다.
“마트에 보니까 가장인 분들이 많거든요. 애 둘 키우면 아끼고 아껴도 이미 학원비, 교육비로 한 100만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 100만원에 기본 식대, 이렇게 나가면 카드 돌려막기로 계속 마이너스, 마이너스 메꾸는 거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노동조합 김진숙(35) 서울본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민중의소리>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본부장은 지난 3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고용노동부 소속 최저임금위원회에 민주노총 몫 위원으로 추천됐다. 월 100만원 남짓 최저임금에 시달려 온 서비스 노동자들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해 단체협상 과정에서 실질적 생활이 가능한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로 내걸기도 했다. 참고로 2015년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 5천580원이다.
“단 5만원, 10만원이라도 저축하고 사는 게 꿈”
“작년에 교섭할 때 언니(마트 동료)들한테 ‘꿈’을 써 달라 하니까 많은 분들이 저축을 좀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단 5만원, 10만원이라도 저축이라도 하고 사는 게 사람이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든든한 느낌인데, 그것조차도 완전히 꿈인 거예요.”
홈플러스 노조에 따르면 서비스산업 종사자는 대략 500만명, 이 중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협력, 파견 등 모두 합쳐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월 10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고 있는 최저임금 당사자이다. 단시간 노동 등 계약 시간에 따라 60~70만원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도 상당수이다.
특히 마트에서 10년을 일해도 월급에는 큰 변화가 없다. 홈플러스 모 지점에서 근무하는 A(2003년 입사, 47, 여)씨와 B(2013년 입사, 46, 여)씨의 지난 2014년도 4월 월정급여 명세서를 보면 이들의 기본급(기본수당+주휴수당)은 A씨 108만1천880원, B씨 103만1천250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근속수당에서는 12년차 A씨가 10만원, 2년차 B씨가 2만원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실제 지급받는 금액(실지급액)은 야간근무까지 하는 B씨가 110만690원(세후)으로 A씨의 100만2천90원(세후)보다 더 많았다.
이 차이는 사실 ‘도긴개긴’이라 할 수 있다. 10년을 일해도 월급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라고 김 본부장은 설명했다. 젊은 사람들이 마트에서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큰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2011년 홈플러스 계산원으로 입사, 지난해 3월부터 노조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본부장 역시 최저임금 당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현재 실지급액 월 110만원(세후) 정도를 받고 있다. 결혼 7년차를 맞은 그의 꿈 역시 ‘저축’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전세금 6천만원을 대출받아 결혼했던 그에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꿈’이다.
“저도 저축을 좀 하고 싶어요. 적금도 들고 싶고. 어차피 식대 이런 것은 아끼고 사는 거고. 남편이랑 저는 집을 사는 꿈은 접었어요. 언젠가 대출금을 다 갚고 나서 저축을 할 수 있다면, 전세금 올려 달라고 할 것에 대비해서 그때 또 대출받는 게 아니라 내가 저축해 놓은 돈으로 올라간 전세금을 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 본부장은 또한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과 지금의 이 가계 상태로는 애 낳고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변에도 결혼은 했지만 자녀 계획이 없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다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이 월급으로 아등바등 살면서 자식한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들을 얘기하더라고요.” 그는 “지금 수준의 최저임금이 계속 유지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어질 것 같다”고 성토했다. 정부에서도 ‘저출산’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기는 하다.
“8시간 계약자 되니까 부러워 하더라”
김 본부장은 2009년 한 대형백화점의 입점업체 판매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협력업체 사원, 홈플러스 계산원 등 다양한 서비스 현장에서 일해 왔다. 백화점에서는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하루 10시간 가까이 서서 일했다. 7~8kg의 몸무게가 급속히 빠졌다. 월급에 퇴직금이 포함돼서 나오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마트 협력업체 사원일 때는 휴일 없이 16일, 17일을 연속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몸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1월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었다. 홈플러스에 입사한 것은 지난 2011년 3월이다.
홈플러스에 처음 입사할 때는 단시간 유급계약직이었다. 사실상 무급으로 추가 노동을 유도하는 사측의 ‘꼼수’, 이른바 ‘쩜오 계약’을 맺은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는 하루 4.5시간 짜리 계약을 맺었고, 월급은 5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식비나 교통비를 제하면 화장품 값이 될까 말까 했다.
“우스갯소리로 동료 언니들이 화장품 값 아끼라고, 아이라인이나 입술 같은 거 바르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밥 먹고 왔다 갔다 교통비 하면 진짜 딱 립스틱 하나 사고 아이라인 살까 말까 한 돈밖에 안 남는 금액이거든요.”
하지만 계산원이었던 그는 운이 좋게 고객서비스센터, 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하루 8시간 계약자가 됐다. “제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8시간(계약)이 되니까 언니들이 부러워하고 그랬어요. 10년 넘게 일하는 분들 중에는 아직도 7시간인 분들이 많은데…. 7시간 계약자랑 8시간 계약자랑 월급 차이가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 나거든요.” ‘시급제’이기 때문에 계약 시간이 적으면 월급도 덩달아 적을 수밖에 없다. 단시간 노동자들의 ‘꿈’(?)은 ‘8시간 계약’이었다.
2년이 넘어 그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그 전에는 6개월 짜리 계약서를 네 번이나 써야만 했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다. “정부가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하잖아요. 6개월 짜리 네 번 쓰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이었어요. 다음에 계약서를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2년에서 4년이 되면 8번을 숨 졸이면서 살아야 돼요. 너무 말이 안 되는 거죠.”
“젊고 멀쩡한 애가 여기 왜 있냐고…빨리 그만두라고 하더라”
대형마트는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거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의 하나이다. 상당한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서비스 업종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것처럼 일부 고객의 ‘갑질’로 모욕적인 일을 당해도 감내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김 본부장은 홈플러스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40, 50대 동료 직원들로부터 들은 얘기에 가슴이 아팠다고 소회했다. “언니들한테 들었던 얘기가 ‘너는 젊고 멀쩡한 애가 왜 여기 있냐. 더 늦기 전에 빨리 그만둬라. 여기는 젊고 멀쩡한 애들이 있을 데가 못 된다’는 거였어요. 오래 일해봤자, 또는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크게 대우받는 것도 아니고. 언니들 입장에서는 아들 딸이 정규직이 돼서 들어온다고 해도 싫다고, 더 늦기 전에 빨리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젊고 멀쩡한 나는 여기 있으면 아까운 것이고 언니들이 여기 있는 것은 괜찮은 건가? 그렇게 생각되는 게 너무 마음이 안 좋더라”라며 “이미 대형마트는 갈 데 없는 아줌마들이 돈 벌러 나온 곳이라는 인식들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형마트 일이라는 것이 진짜 아무나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여기서 10년 넘게 견디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고 남들로부터 역시 그렇게 평가받지 못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없다. “다들 근골격계 질환을 다 안고 살고 있어요. 항상 서 있고 무거운 짐들도 나르고 하잖아요. 어깨, 허리, 발바닥, 인대 안 아픈 곳이 없어요. 또 하지정맥류에 발톱도 빠지고.” 고객센터 같은 곳은 두통약을 상비해 놓는다고 한다. 보통 ‘진상’이라고 불리는 일부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 본부장도 고객센터 근무 당시 바로 앞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다가 서랍에 비치해 두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진상’ 고객의 ‘갑질’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 50대 동료 직원은 점심 식사를 하던 도중에 상담실로 불려가서 30대 고객에게 사과해야 했다. 20대 초반의 정규직 인턴 직원은 주차장으로 불려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고객의 집으로 ‘소환’되는 경우도 있다. “우유가 상한 것 같다”고 주장하는 고객이 직원을 집으로 불러 사과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고객은 상한 우유를 마셔보라고 했고, 그 직원은 그 우유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무릎이 없다”는 얘기도 돈다. 최저임금에 고강도의 노동과 온갖 수치도 감내해야 하는 마트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김 본부장은 이들의 노동이 ‘숙련 노동’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매출 증대를 위해 ‘서비스’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이를 ‘단순 노동’으로 취급하고 근속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서비스야말로 ‘숙련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입사 5년차인 저와 10년차 직원이 고객을 대하는 스킬은 완전히 달라요. 진상 고객이 오거나 해도 대처하는 방식이 훨씬 유연한 거죠. 이것이야말로 숙련 노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요? 숙련 노동자들의 고품질 서비스로 인해 대형마트가 성장하는 거예요.”
더불어 그는 회사가 노조에도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가 ‘서비스, 서비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서비스가 좋아질까요? 직원들 마음이 편해야 서비스 좋아지는 거잖아요. 노조가 생기고 나니까 할 말 하고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받으니까 그나마 출근하는 게 즐거워졌다고 해요. 서로 경쟁하고 질시만 하다가 노조가 생기니까 동료애가 더욱 끈끈해졌다고 해요. 정말 나오기 싫은 직장이고 지긋지긋하고 못 살겠다고 했던 직장이 그나마 좋아진 건 회사가 노조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해요.”
“당신이라면 한 달에 100만원 받고 살 수 있습니까?”
최저임금위원회는 4월 중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공익위원 9명, 노동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0일 김진숙 본부장과 함께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등 4명을 위원으로 추천했다. 민주노총은 도시근로자 1인 가구 가계지출, 최저임금 노동자 가족의 표준생계비 등을 산출한 결과 등을 토대로 ‘최저임금 1만원’ 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용자 측에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을 1.6%(5천580원→5천669원)로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김 본부장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 당사자로서 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절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할 생각이다. 또 사회적 지지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도 대대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반드시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도출하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이다.
그는 협상에서 사용자측 위원들에게 “당신들이 정말 100만원씩 받으면서 정상적인 가계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당신의 노동과 이 회사를 키우고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 중 어떤 노동이 더 값어치가 있는지 제대로 성찰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가장으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얼마나 힘들게 가계를 꾸려 가고 있는지, 당신들이 이 자리가 아니면 그런 얘기를 못 들으니까 이 자리에서 만큼은 똑바로 들어 보라”는 당부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응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결국 김 본부장이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라면 한 달에 100만원 받고 살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