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지난해 ‘카트’라는 영화가 극장에 간판을 걸었다 조용히 사라졌다. 스타는 아니라도 연기파 배우들로 캐스팅을 채우고, 현실감 있는 시나리오에 탄탄한 연출을 쌓아올린 작품이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비정규직의 투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카트’는 2007년에 실제로 있었던 ‘홈에버 사태’를 모티브로 한다. 2007년 한국에서 철수한 까르푸를 인수해 홈에버로 영업을 시작한 이랜드는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단행했다. 이에 반발한 해고직원들이 홈에버 월드컵몰점에 모여 500일간 농성을 벌였던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가 ‘카트’다.
이 사태는 2008년 삼성테스코가 홈에버를 인수한 후 고용보장을 약속하면서 해결된다. 8년이 지난 지금 홈플러스가 다른 주인에게 팔리는 처지가 되면서 홈에버 출신 홈플러스 직원들에게 ‘잔혹한’ 역사가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홈에버 출신 직원을 비롯해 2007년의 트라우마에 아직 딱지가 앉지 않은 홈플러스 직원들은 사측의 ‘깜깜이’ 매각을 문제 삼으며 투쟁 준비에 군불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에 인수된 매장은 까르푸 시절부터 프랑스인 경영진과 한국인 직원들간에 끊임없는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회사다. 이랜드라는 한국업체에 팔린 뒤에는 해고 폭탄을 맞았고, 외국계 소유주인 테스코는 일언반구도 없이 하루 아침에 회사를 팔아버리기로 했으니 참 기구한 운명이다.
현재 홈플러스에 입질하고 있는 인수 예정자들은 모두 사모펀드다. 뒤통수를 맞은 홈플러스 근로자들은 이에 반발해 이미 투쟁이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이들의 불안감은 당연히 고용 때문일 것이다. 사모펀드의 목적은 자비없는 ‘돈벌이’ 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를 사들인 후 수익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가차 없이 처낼 것이라는 게 노조가 두려워하는 이유다.
홈플러스는 비상장사다. 소유주가 매각을 진행하는데 있어 이를 공개할 의무가 없고,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라면 매입자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더라도 이를 반대할 명분도 없다.
2만명이 넘는 홈플러스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지만 지금으로써는 누가 될지 모르는 인수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잠시 시간을 돌려 월마트의 매각을 돌아보자. 까르푸와 비슷한 시기에 월마트는 신세계에 모든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명예와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고용승계를 보장했고, 그 후 우리가 알다시피 이마트는 승승장구 하고 있다.
사모펀드의 목적은 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들인 회사를 비싸게 되팔기 위해서는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시켜 놓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성마른 구조조정으로 노조를 적으로 돌리고 자칫 수개월간의 점거농성이라도 벌어진다면 이익은 커녕 결국 여론과 정부까지도 적으로 돌리게 될지 모른다.
홈플러스 근로자들은 이미 처절한 투쟁의 경험이 충분하다. 누가 될지 모르는 인수자는 지금 감돌고 있는 전운이 불러올 최악의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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