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13] 홈플러스 노동자들, 영화 ‘카트’ 아픔 다시 겪나

매각 추진하는 모기업 테스코
노조 절차공개·고용승계 요구에 침묵
“노동자를 비용으로만 보는 회사”
파업 예고… 8년 만에 거리 나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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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의 주인공들인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13일 서울 홈플러스 면목점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카트를 정리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서울 중랑구 면목동 홈플러스에서 매장관리를 맡고 있는 황옥미(55)씨는 8년 만에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모기업인 영국계 테스코사(社)가 한 사모펀드와 홈플러스 매각 입찰을 진행 중인 가운데 고용 승계와 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사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8차례 노사 교섭이 진행됐지만 사측은 “매각 여부가 정해진 게 없다”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조측은 회사측에 매각시 고용승계, 매각절차 공개, 시급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황씨는 “구조조정 강도가 센 사모펀드에 인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해고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손이 안 잡힌다”고 불안해 했다.
황씨는 2000년 프랑스계 유통회사 까르푸의 계산원으로 입사했다. 집과 직장 밖에 모르던 황씨였지만,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 홈에버가 2007년‘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내용의‘비정규직보호법 시행(7월)을 앞두고,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계산원 외주화 계획을 발표하자“고용불안을 해소하라”며 거리에 나섰다. 마트 노동자 1,000여명이 참가한 이 파업은 512일 동안 이어져 12명이 해고되는 등 큰 후유증을 남겼었다. 당시 노조 간부로 5월부터 적극적으로 싸움에 나섰던 황씨도 그 해 12월 해고됐다. 지난해말 개봉한 ‘카트’는 바로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다룬 영화다. 매각을 앞둔 국내 굴지의 대형마트가 비정규직은 용역업체로 정규직은 계약직으로 전환한다며 하루 아침에 해고 통지를 내리자, 이들이 노조를 만들어 회사와 긴 싸움을 한다는 내용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황씨는 “당시 면목지점에 싱글맘이 많았기 때문인지 주인공 선희가 아들 급식비를 내지 못하고 집에 전기가 끊겼던 장면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영화에 잘 그려져있듯 해고가 된 황씨는 당장 경제적 곤궁과 맞닥뜨려야 했다. 1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못 받게 되자 소방 공무원이던 남편의 수입만으로 대학 3학년, 고교 3학년이던 두 딸의 학비를 대는 것조차 버거웠다. 당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큰 딸의 등록금만 1년에 1,500만원이 넘었는데 황씨는 신용카드를 돌려 막으며 3,000만원이 넘는 빚을 져야 했다. 장기 파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해고 이후 1년 넘게 피부 가려움증으로 고생도 했다. 다행히 홈에버를 인수한 삼성테스코가 2008년 11월 노조와 해고자 복직에 합의하면서 황씨는 해고된 지 300여일 만에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나 흘렀으나 상황은 제자리다. 인수 후 자신을 고용을 승계했던 회사가 이번에는 회사를 매각할 입장이 되자‘고용승계’여부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황씨는”노동자 한 명 한 명을‘비용’으로만 바라보는 회사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부는 때만 되면“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하지만 말과 행동이 따로다.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촉발했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회사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는

커녕 비정규직을 2년마다 재계약하는 편법을 쓰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슬금슬금 추진하고 있다. 황씨와 같이 이랜드 홈에버 사태 당시 해고의 아픔을 겪었던 임희석(37) 홈플러스테스코 노조 사무국장은 “비용 절감을 내세워 사측이 고용안정성을 위협하는 일이 여러 사업장에서 반복되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이 안 된다면 다시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이번주까지 회사가 협상안을 내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 부분 파업에,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전면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홈플러스 매각과정에서 사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홈플러스 노동자 2만여 명의 생계를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 계획처럼 비정규직 사용 기한마저 연장되면 회사는 비정규직을 4년 동안 쓰고도 해고할 수 있어 고용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 원문 읽기-> http://goo.gl/5wG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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