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람’ 몰아치는 ‘마트의 거리’
홈플러스 사모펀드에 매각되면…
실적이 신통치 않은 홈플러스를 사모펀드가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돈바람’이 일어날 공산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비싼값에 되팔기 위해선 규모나 실적을 하루빨리 키워놔야 해서다. 홈플러스 인수전에 등장한 사모펀드, 대형마트 시장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홈플러스 인수전이 사모펀드(PEF) 경쟁구도로 좁혀졌다. 홈플러스 유력 인수 후보로 꼽혔던 오리온은 홈플러스 인수 예비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잠재 매도자 측에서 협상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사실상 탈락했다. 홈플러스 인수전의 몇 안되는 전략적 투자자(SI) 후보였던 현대백화점, 농협 등도 예비입찰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이하 칼라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 골드만삭스PIA 등 4개사로 본입찰 후보가 좁혀졌다.
대형 유통채널이 줄줄이 인수전 참여를 철회한 이유는 대형마트 업태의 어두운 전망에 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한 인수ㆍ합병(M&A) 전문가는 “(인수전에 참여한) 사모펀드들이 이전의 투자건에서 손해를 꽤 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투자에서 발생한 손해를 만회하려면 수백억, 수천억 단위의 소형 딜로는 역부족이라서 홈플러스 매물을 주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의 드라이파우더(투자 목적으로 모금됐지만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미투자 자금) 규모는 상당하다. 칼라일과 어피니티의 경우 지난해에만 각각 39억 달러, 38억 달러의 펀드를 조성했다. 대형 바이아웃(Buy-Out) 거래에 목말라했던 글로벌 사모펀드 입장에선 거래 가격이 7조원 안팎으로 예상되는 홈플러스는 군침을 흘릴 만한 매물이었을 거다. 사모펀드의 홈플러스 인수가 유력시되면서 앞으로의 대형마트 판도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사모펀드는 일반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사서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전략을 쓴다. 사모펀드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가능성이 커진 이상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게 분명하고, 그렇다면 대형마트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망이 밝지도 않은 대형마트를 굳이 사겠다고 나서는 건 ‘무모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라며 “홈플러스의 주인이 되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대형마트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사모펀드의 홈플러스 인수시 대형마트를 비롯해 기업형슈퍼마켓(SSM), 편의점 등에서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홈플러스는 가격 대비 높은 가치 제공, 상품차별화 등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홈플러스는 테스코 테두리 속에서 해외제품 소싱을 했다”며 “앞으로 테스코와 결별함에 따라 해외제품 머천다이징을 강화하고 유통채널간 옴니채널의 활용, 인터넷 사업 강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3년간 국내 대형마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 왔다. 올 1분기만 해도 이마트 매출은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0.9%)와 롯데마트(-3.0%) 매출은 감소했다. 웬만한 ‘전략’으로는 통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추가 출점도 어려워졌다.
대형마트 판도 흔들까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인구의 고령화, 1~2인 가구의 확대 등으로 기존의 대형마트만으로 더 이상 승부를 걸기 어려워졌다”며 “일부 매장의 유통포맷을 ‘창고형할인점’으로 바꾸고 독일의 알디(Aldi) 같은 저가형 슈퍼마켓 점포 등으로 바꾸는 등의 체질개선이 제대로 이뤄져야 승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경쟁사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이마트 관계자는 “홈플러스를 누가 인수하든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다”며 “이제까지 그랬듯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특성상 공격적인 경영보다 ‘효율화작업’에 집중될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대형마트 시장에서 더 이상 규모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라 출점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점포를 늘리는 등의 규모 확장은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는 경쟁사인 롯데마트나 이마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업이익률이 낮다”며 “규모를 키우기보다 내부 효율성 개선작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이유는 홈플러스는 경쟁사와 비교해 수익성이 확연하게 떨어져서다. 지난해 기준 홈플러스의 영업이익률은 3.3%로, 이마트(6.1%), 롯데마트(3.7%)보다 훨씬 낮았다. 사모펀드가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 가장 먼저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홈플러스 노조가 사모펀드 인수를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가 수장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새로운 사모펀드의 홈플러스 인수 직후 비효율 제거를 위해 가장 먼저 구조조정부터 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이전에는 없던 혁신을 꾀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내 유통 시장은 글로벌 기업에 무덤으로 통할 만큼 만만치 않은 시장이라서다. 과거 월마트와 까르푸는 국내 시장에 발을 들였다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철수했다. 언급했듯 대형마트 업태의 전망이 어려운 것도 장애물이다.
▲ 홈플러스가 기업형슈퍼마켓, 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어떤 반전을 꾀할지 알 수 없다.[사진=뉴시스] 제값에 되팔 수 있을지 의문
하지만 사모펀드의 저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바이더웨이를 사모펀드가 인수한 후 간판을 노란색으로 바꾸고 매장 내 선반을 곡선 형태로 바꾸는 등의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며 “죽어가는 브랜드를 인수해 가치를 높인 다음 높은 가격에 롯데에 되판 걸 보면 사모펀드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유니타스 캐피탈은 2006년 7월 오리온그룹으로부터 바이더웨이를 인수해 2010년 4월 2740억원에 매각, 투자기간 3년여 만에 투자원금 대비 2.5배의 결실을 맺었다.
홈플러스 인수전의 윤곽부터 제대로 나와야 판도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홈플러스의 매각가의 윤곽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홈플러스가 일괄 매각될 수 있을지부터 시작해 사모펀드에 인수된 후 기존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할지 등이 결정돼야 앞으로의 시장 판도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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