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6.25] 월급날 빨리 돌아가는 머리… 이번 달도 적자 [최저임금위원회에 바란다④마지막] 미혼 마트 노동자의 편지

[오마이뉴스 6.25]

월급날 빨리 돌아가는 머리… 이번 달도 적자
[최저임금위원회에 바란다④마지막] 미혼 마트 노동자의 편지

저는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상품 진열 업무를 맡고 있는 37살의 미혼 여성입니다. 하루 종일 종종 걸음을 걸어야 하고, 무거운 물건을 수십 번씩 들고 내려야 해 웃을 새도 없지만 항상 고객님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옮기는 걸음은 하루 평균 2만보.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치면서 매장에 물건을 채우다 보면 퇴근 무렵에는 어깨 위에 무거운 돌을 얹은 듯 온 몸이 녹초가 되기 일쑤입니다. 발바닥이 아파서 절뚝거리며 퇴근을 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손가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손을 펴지도, 구부리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데도 출근을 함과 동시에 만면에 미소를 띠고 친절을 베푸는 마트 직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해 지난 5월 한 달 동안 번 돈은 약 110만 원. 월급날이 되면 제 머릿속은 평소와는 달리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전세자금 대출을 갚기 위한 적금과 세금 및 통신비, 생활비를 계산하고 월급이랑 비교해보고… 이번 달에도 당연히 ‘적자’입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하루 2만보… 한 달 월급은 약 110만 원

작년 이맘때 2015년 최저임금을 정할 즈음 누군가 “최저임금이 생활임금만큼 오르게 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싶다”라고 답했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글썽이게 됩니다.

어릴 때 제 기억 속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자식들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뒤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억척같이 일하고 월급날이 되면 뿌듯해 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말이죠. 하지만 이런 부모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작스레 찾아온 IMF. 그것은 우리 부모님과 저와 언니를 ‘무기력화’ 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계속 눈물만 흘리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반복하는 부모님과 한 순간 집이 넘어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을 벌어야만 했던 저의 20대 생활. 물론 처음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는 저 또한 ‘그래… 나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막연히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지요.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제게 남은 것은 꼬박꼬박 돌아오는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상환 날짜와 대출 상환일을 연장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한숨뿐입니다.

 

“내 자식에게만은 최고를”… 다 같은 부모의 마음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보같은 환상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이 지금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제가 40대가 되어도 안정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점을 배운 것입니다.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형마트 일을 하면서 만난 동료 직원인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가슴이 아픕니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100만~120만 원. 전 아직 미혼이라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없지만, 그 돈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언니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마트에서 일하는 언니들도 ‘내 자식에게만은 최고를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도 온몸이 녹초가 된 언니들이 유통기한 종료 임박에 할인된 우유와 햄, 달걀 등의 식료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퇴근합니다. 그 언니들의 심정을 최저임금위원회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파도 마음껏 쉬지 못하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신세. 한두 군데 고장난 건 기본이고, 십수 년 고된 노동에 그냥 놔둘 수 없는 병이 생겨 병원에서 수술을 권해도 행여 일자리가 없어질까 치료는 엄두도 못 냅니다.

“월급날이면 뭐하냐? 은행에서 빼가는 돈이 반이 넘는데. 뼈 빠지게 일해도 어째 빚만 늘어나지? 아우 열받아. 하긴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 얘기하지만 끝내 뒷말을 흐리는 동료들. 그들의 팍팍하고 고된 생활을 어찌 모두 전할 수 있겠느냐마는 최저임금위원님들, 한번쯤은 그들의 서러운 마음들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가장들과 5분 정도만 얘기해 보세요. 금세 ‘아… 정말 5580원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겠구나. 민주노총에서 말하는 최저임금 1만 원이 허황된 얘기가 아니구나’ 하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마트 노동자 월급이 200만 원이 되면…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마트에서 일하는 평범한 아줌마들은 “아, 정말 월급이 200만 원이 되면 뭘 하지?”라며 들뜨기도 하고, “뭐 진짜 그렇게 되겠어? 매년 이러다 말던데…”라며 빠르게 체념해 버리기도 합니다.

며칠 전 직원식당에서 “정말, 진짜로 월급이 200만 원이 되면 뭐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본격적인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진짜 절반은 마이너스 통장 메운다.”
“애들 등록금 대출 한 거 이자 갚아야겠네.”
“지긋지긋한 전세 자금 대출 갚아야지.”
“1년에 한 번쯤은 가족여행이란 걸 가보고 싶네.”
“대학생이 두 명인데 난 200만 원 받아도 마이너스인데…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 좋겠다 ㅋ”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쯤은 영화 한 편 정도 보면 안 되냐?”
“밤에 택시비 아끼려고 꾸역꾸역 걸어갔는데 속 편히 택시 탈 수 있는 거야?”

대출 이자를 갚고, 조금 욕심을 낸다면 1년에 한번 가족여행, 한 달에 한번 영화보는 것. 혹시라도 이 말을 듣고 “이거? 이 정도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단 1초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하루 빨리 마트, 혹은 학교 비정규직, 혹은 공장의 노동자 등등 흔히 볼 수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얘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만약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된다면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릴 겁니다.

“아빠, 엄마… 나 이번 달부터 월급 올랐어. 전세자금 대출? 걱정하지 마세요. 용돈 부쳤으니 좋은 옷 한 벌, 맛있는 음식 꼭 사 드세요”라고 전화를 드리는 모습, 상상만 해도 행복해 집니다.

저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냥 저와 가족 그리고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함께 작지만 행복한 꿈을 꾸고,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이제는 우리 부모님과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조금은 편히 생활했으면 합니다.

최저임금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에 단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최저임금 만원 인상은 어렵지 않은 숙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내는 노동자의 절박한 심정을 논의 과정에 꼭 반영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사원문보기 => http://goo.gl/Ja3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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