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9.24] ‘점오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 김진숙 서울본부장 인터뷰

[시사인 9.24]

‘점오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
홈플러스에는 하루 4시간30분 일하는 ‘4.5 언니’와 7시간30분 일하는 ‘7.5 언니’가 있다. 분 단위 계약제인 ‘점오 계약제’는 여전히 많은 점포에 남아 있다. 이들이 생활임금을 주장하고 나섰다.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함.’ 최저임금법 제1조가 밝힌 이 법의 목적이다. 2014년 현재 법정 시간당 최저임금은 5210원이다.

그런데 5000원대 시급으로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 가능할까.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계는 ‘그렇지 않다’고, 재계는 ‘그렇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계 대표 위원들은 2015년에 노동자가 시간당 6700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계는 “두 자릿수 인상률이 말이 되느냐”라며 올해 수준(5210원)으로 동결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지난 6월27일, 노동계와 재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올해보다 7.1% 오른 5580원으로 내년도 최저 시급이 결정 나면서 끝났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서 정작 5000원대의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배제된다. ‘을 중의 을’인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계 대표위원으로 뽑히기도 힘들다.
홈플러스 노조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의 비현실성을 주장하며 생활임금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홈플러스 노조 조합원들이 최저임금의 비현실성을 주장하며 생활임금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최저임금제에 집착하지 말고 아예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생활임금 도입운동이 대표적이다. 생활임금제는 노동자에게 말 그대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지급하자는 제도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지자체장 권한으로 공공부문 저임금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 경기 부천시, 광주 광산구 등이 현재 생활임금제를 실시 중이다(생활임금?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기사 참조). 지난 8월28일 서울시도 2015년부터 생활임금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영역의 경우 국내에는 아직 대표 사례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올해 초 미국 이케아와 영국 네슬레가 직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홈플러스 직원 김진숙씨(35)의 이야기를 통해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들의 삶을 정리해봤다. 다음은 8월25~ 27일 김씨가 홈플러스 노조 및 회사 측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나는 홈플러스 서울 영등포점에서 하루에 7시간30분간 일한다. 나 같은 직원을 이른바 ‘7.5’라 부른다. 시급은 2014년 8월 현재 5450원이다. 주 5일 근무라 한 달에 9일가량 쉰다. 월급 통장에는 매달 95만~100만원 정도가 찍힌다. 하루 6시간30분 일하는 ‘6.5’ 언니들이나 4시간30분 일하는 ‘4.5’ 언니들 월급은 100만원 근처에도 못 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5, 6.5 언니 중에는 7.5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으면 7.5가 되어 일을 더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직원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나마 나는 비교적 젊다는 이유로 빨리 7.5가 된 편이다. 아, 4.5, 6.5, 7.5 계약이 무엇인지 좀 더 정확히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올해 초 언론에서 한창 시끄러웠던 이른바 ‘점오 계약제’(0.5시간 계약제)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홈플러스는 계약 시간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나눈다. 예전에는 20분, 30분 단위로 나눴는데 그나마 요즘은 30분 단위로만 나눈다. 경영진은 2004년 주 5일제 실시로 줄어들게 된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높여주고자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조가 느끼는 건 반대였다. 경영진이 계약 시간을 줄여서 인건비를 낮추려는 의도로 읽혔다. 결국 올해 초 점오 계약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노사가 합의했지만 여전히 많은 점포에 이 제도가 남아 있다.

내가 홈플러스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은 ‘젊은 친구가 여기 왜 왔느냐’고 걱정했다. 홈플러스 직원 대부분이 40~50대 주부 사원이다. 일은 고된데 돈은 별로 안 주니 젊은 친구들은 왔다가 금세 그만둔다. 결국 40~50대 주부들이 무거운 물건 나르기 등 힘쓰는 일을 다 맡아서 한다. 그래서 어깨 위로 팔도 제대로 못 올릴 정도로 골병 든 언니가 많다. 그래도 언니들은 4.5, 6.5가 아닌 7.5가 되고 싶어한다. 7.5가 손에 쥐는 월급도 100만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한 푼이 아쉽기 때문이다.

오래 일할수록 시급이 올라갈 테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되지 않느냐고? 이것도 희망이 없다. 5년쯤 전만 해도 홈플러스 최저 시급이 법정 최저 시급보다 900원 정도 많았다. 그런데 점점 법정 최저 시급과 우리 시급 사이의 폭이 좁아져간다. 2011년 입사자인 내 시급이 5450원인데, 올해 입사한 사람도 시급이 5450원이다. 10년차 직원 시급도 신입과 비슷하다.
김진숙 홈플러스 노조 서울지역본부장(위)은 8년차 직원이 받은 급여명세서(오른쪽)를 보여주었다.
ⓒ시사IN 이명익
김진숙 홈플러스 노조 서울지역본부장(위)은 8년차 직원이 받은 급여명세서(오른쪽)를 보여주었다. 한 달에 120만원 벌고 싶은 건 꿈일까요?

근속수당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얼마 안 된다. 2년 근속하면 월 수당 2만원이 더 나온다. 그런데 이 근속수당이 차차 오르다가 8년 이상 근무부터는 오르지 않는다. 8년차, 10년차, 15년차 모두 근속수당이 10만원으로 똑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홈플러스에서 10년을 근무하고도 월급이 100만원이 안 되는 직원이 수두룩하다.

따라서 우리 처지에서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다들 빚 없이 살아보는 게 소원이다. 나는 남편과 둘이 산다. 남편 수입은 전세 대출금 상환에 들어가고, 내 월급은 우리 부부 생활비로 쓴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저축을 못한다. 아이를 낳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나마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녀도 있고 근무시간도 짧은 언니들은 ‘카드깡’ 안 하고 사는 것, 통장 마이너스 안 쓰고 사는 것이 소원이다.

따지고 보면 홈플러스 직원 중 법정 최저 시급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는 최저임금법 제1조에 나온 대로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 이뤄져야 하지 않나?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도 홈플러스 경영진은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직원들 대상으로 ‘제살 깎아먹기식 투쟁을 하지 말라’는 공고문도 냈다. 대형마트 의무 휴무 등으로 가뜩이나 회사 경영이 어려운데, 노동자들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급이 6000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니들도 애당초 월 200만원까지는 꿈도 안 꾼다. 120만~130만원이라도 받고 싶다는 게 기본 요구다. 그래서 홈플러스 노조가 말 그대로 생활에 필요한 임금으로서의 ‘생활임금’ 실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것을 임금인상률, 즉 ‘퍼센티지(%) 싸움’으로만 본다. 두 자릿수 인상률은 억지라는 것이다. 생활임금이라는 말도 정치적 구호라며 부담스러워한다.

홈플러스는 연 매출액이 10조원에 달하는 국내 유통업계 2위 업체다. 이런 대기업이 대다수 직원을 최저 시급의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이 점에 대해 홈플러스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 상승 퍼센트에 강박을 갖지 말고, 실제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매장을 늘리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사원문보기 => http://goo.gl/g3Hp9A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