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11] 치졸한 ‘점오 계약’ 종말 고하다

홈플러스 기이한 0.5시간 근로계약 폐지… 비정규직 임금 줄이는 수단으로 악용

지난 1월 9일 홈플러스의 노사가 ‘점오 계약'(30분 단위 계약) 폐지에 합의했다. 기이하고, 교활하고, 비인간적이었던 ‘점오 계약’이 폐지된 것은 다행이지만,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가장 악질적인 시간제 일자리”라고 비판할 정도로 ‘점오 계약’이 고용시장에 남긴 악영향과 충격은 적지 않다. 도대체 ‘점오 계약’이 어땠길래 이런 평가가 나오는지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 편집자주 >
이미화씨(가명)는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두 아이의 삶을 책임져야 했지만 결혼 후 전업주부 생활만 했던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여느 주부들처럼 대형마트를 택했고, 2008년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입사했다. 사측은 이씨에게 외국기업이 사용하는 선진기법이라면서 하루 7.5시간 계약서를 내밀었다.

“‘8시간이면 8시간이지, 왜 7시간 30분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선진기법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오 계약에 대한 의심이 커져갔다. 점오 계약엔 교묘한 꼼수가 숨어 있었다. 근무에 들어가기 전 준비시간과 퇴근시간 후 이어지는 인수인계 시간까지 합하면 이씨의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이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실장이 발표한 ‘2013년 홈플러스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 분석 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평균 업무 준비 시간은 21분, 퇴근 후 업무 마무리 시간은 18분, 실제 식사시간은 30분이었다.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을 초과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

이씨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일하지만, 점오 계약에 의해 7.5 시간 일한 것만 인정을 받는다. 최소 하루 30분씩을 회사가 임금 지불 없이 착취하는 구조인 셈이다.

사측의 노림수는 이것만이 아니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고객이 밀려들 때는 사측의 요구로 나와서 2.5시간을 더 일할 때도 있다. 3시간도 아니고, 5시간도 아니고, 딱 2.5시간. 여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점오 계약에 따르면 5일을 일할 경우 주당 근로시간이 37.5시간이 된다. 2.5시간을 더 일하면 딱 40시간을 채운다. 법정근로시간인 1주 40시간을 초과할 경우 초과근로수당으로 통상 시급의 50%를 더 받는데, 이씨는 40시간만 인정받기 때문에 초과근로수당을 한푼도 받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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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근로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
이씨가 실제 일하는 주당 근로시간을 43시간으로 잡으면 이씨는 3시간에 대한 초과근로수당을 떼인 셈이다.

편법을 활용한 임금착취, 이게 홈플러스가 굳이 점오 계약을 맺은 비밀이었다.

점오 계약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은 또 있었다. 8시간 일하면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7.5시간이라는 이유로 휴식시간도 30분에 불과했다.

이씨는 “점오 계약을 사측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다”면서 “인원이 부족해서 휴식시간 30분 이용도 거의 불가능했고, 사측이 주당 40시간에만 맞춰서 일을 더 시키기도 했다. 점오 계약이 선진국형 제도인 줄 알았는데, 회사가 한푼이라도 벌려고 나온 사람들을 가지고 놀기 위해 만든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홈플러스는 점오 계약에서 멈추지 않았다. 하루 근무 7.2시간, 6.2시간 등 20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점이 계약’까지 늘렸다는 것. 매장 영업직, 계산원 등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사측과 맺은 근로계약 시간은 7.5/7.4/6.5/6.4/6.3/6.2/5.5/4.5시간까지, 즉 점오에서 점이까지 다양했다.

점오·점이 계약을 맺은 비정규직은 그나마 근로시간이 가장 긴 7.5시간을 대부분 원한다. 4시간 일하기 위해 출퇴근을 하는 것보다는 7.5시간 일하는 것이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7.5 계약시간을 원해서 제비뽑기를 한 점포도 있었다. 울산 홈플러스 남구점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씨의 말이다.

“계산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7.5/6.5/5.5 계약이 있다. 대부분 긴 시간을 원한다. 어차피 출퇴근시간은 같으니까. 하지만 사측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만 계산원을 많이 투입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7.5시간 계약 계산원 숫자가 별로 없다. 하지만 대부분 7.5 계약을 원하니까, 6개월마다 제비뽑기를 통해 7.5 계약자를 선정한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점오 계약은 14년이나 이어져 오다가 2013년 3월 홈플러스 노조가 생긴 후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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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조 설립으로 14년 만에 알려져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회사에 항의를 하거나 외부에 알리기 힘들었다”면서 “만일 회사에 항의를 하면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업무로 보복을 한다. 노조가 생기면서 말도 안 되는 점오 계약을 외부에 알릴 수 있게 됐다. 사측이 점오 계약을 통해 직원들의 임금을 깨알같이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노조의 계산에 따르면 시급 5600원을 받는 비정규직 직원을 기준으로 1년간 7.5 계약 직원에게 돌아가야 할 급여가 113억원 미지급됐다. ‘2800원(30분 급여)×21일(1개월 근로일수)×1만6000명(홈플러스 비정규직원 수)×12(1년)’을 계산해본 결과다.

노조가 이런 금액을 추산하는 근거는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 3항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적시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는 “업무 인수인계까지 합하면 8시간을 초과하는데도 불구하고 7.5 계약으로 회사는 0.5시간의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며 “회사가 임금체불을 한 것이다. 회사가 직원의 30분을 떼어먹기 위해 아주 비겁한 방식을 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민주당)도 “점오 계약은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내용”이라며 “시간제 일자리의 한 유형인데, 가장 악질적인 유형”이라고 비판했다.

홈플러스 측의 해명은 황당했다. 노사협의로 점오 계약을 폐지하기 전 취재에 응했던 한 홈플러스 관계자는 “주 6일 근무를 할 때 7시간 계약을 했다. 42시간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주 5일 근무로 바뀌면서 7시간 계약을 맺으니까 35시간으로 줄었고, 우리는 직원을 생각해서 30분을 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원들의 수입을 늘려주기 위해서 인심 쓰듯 30분을 더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점오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사가 0.5시간 임금 체불한 것”
홈플러스는 연장근로수당을 주는 것에도 인색했는데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가리지 않았다. 매장에서 비정규직과 함께 일하는 정규직은 주당 40시간을 일하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훨씬 길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이 높지만, 통상 시급의 50%가 가산되는 초과근로수당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노조는 출범 이후 2명의 노조원이 대표로 사측을 상대로 연장근로수당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참여한 최모씨는 “2008년 아르바이트로 입사해 2010년 11월 정식사원이 됐다. 흔히 말하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아무런 수당도 받지 않고 일만 했다”고 말했다.

“정규직이 된 후에도 바뀐 게 없었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매장에 나와 일하는데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5개월 동안 나의 일한 시간을 꼼꼼히 기록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얼마 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회사에 기록을 남기고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서 “연장근로수당 소송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1월 9일 홈플러스는 노사협의로 점오 계약을 폐지했다. 2014년 상반기까지 개선방안을 확정하고, 2016년 3월 31일까지 폐지하게 된다. 10분 단위 계약제는 3월 1일부터 폐지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민정 교육선전국장은 “점오 계약을 폐지할 때 하향 조정하지 않기로 했다. 7.5 계약자는 8시간 계약이 되는 것”이라며 “홈플러스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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