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5%뿐…“쉬는날 근무도 거절 못해”

대형마트 노동자 실태

 

평균임금, 최저임금 수준 그쳐 4시간 근무에 30분 휴식 말뿐 “비정규직 늘며 불안정성 심화”

성수정(가명·43)씨는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고등학생 딸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취업을 했지만, 병원비가 더 들게 생겼다. 고된 노동으로 온몸의 관절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성씨는 먹거리와 세제·부탄가스 등의 공산품을 주로 진열하는 가공·일용 섹션에서 일한다. 소비재의 특성상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진열해야 하고, 제품들은 그만큼 빨리 진열대에서 사라진다.

성씨는 한번에 20㎏ 정도의 물건들을 창고에서 카트나 엘카(물건을 나르는 접이식 손수레)에 실어 하루 수십차례 매장으로 나른다. 마트 직원들은 농담조로 “우리에겐 만보계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도 많이 걷기 때문이다. 최근 노조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매장 직원들은 하루에 평균 만 걸음 이상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평균 보폭을 75㎝로 계산하면 7.5㎞에 이르는 거리다. 온종일 서 있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걸어다니니 무릎이 성할 리 없다. 여기에 창고에서 물건을 빼오고 매장 진열대를 정리하면서 성씨의 어깨도 망가졌다.

홈플러스 쪽은 4시간 근무에 30분씩 쉬라고 한다. 하지만 말뿐이다. 30분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주말은 쉬는 시간이 없는 ‘풀 근무’다. 점심시간도 1시간이 주어지지만 대부분 20분 안에 먹고 나온다.

 

근무 형태도 뒤죽박죽이다. 마트에는 ‘오픈조’와 ‘마감조’가 있다. 오픈조는 개장 1시간 전에 나와 근무 준비를 한다. 보통 오전 9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8시 전에는 출근한다. 마감조는 오후 2시에 출근해 문을 닫는 밤 12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정리를 하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다. 1주일에 한번씩 진행되는 ‘행사’(특정 품목의 할인 판촉) 전날엔 진열대 품목을 몽땅 바꿔야 한다. 새벽 2~3시가 돼서야 퇴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매장에서 근무복이 아닌 사복이나 등산복을 입고 일하는 사원들을 가끔 목격할 수 있는데, 이분들은 쉬는 날 갑자기 불려나와서 일하게 된 경우다. 시민들의 상상 이상으로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다른 홈플러스 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창고일을 하는 이현승(가명·25)씨는 성씨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더 늦게 퇴근한다. 대형마트는 새벽과 심야에 물건들이 들어온다. 오픈조일 때는 새벽 6시 전에 출근하고, 마감조일 경우엔 새벽 3시가 다 돼야 퇴근한다. 이씨는 퇴근시간이 됐는데도 “퇴근하라”는 소리를 안 해주는 정규직 관리직원들이 야속하다. 그들이 퇴근하기 전에 먼저 퇴근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3년을 일한 이씨는 쉬는 날엔 집에서 멍하니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씨는 “체력도 주머니도 바닥난 상태”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씨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정규직 전환’이다.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게 고강도 노동만은 아니다. 중간관리자들의 폭언과 고압적 태도도 노동자들을 아프게 한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군대 문화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노동자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일방적 인사와 관리자의 욕설·폭행을 눈감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참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계약서상 하루 4.5~7.5시간 근무하며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한다. 노조는 이들이 계약된 노동시간을 훨씬 넘겨 초과근무를 하고 각종 부당한 지시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하청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협력업체 직원’이라 불리는 이 직원들은 아침마다 정례 회의에 참석하고 홈플러스 직원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이 노조 쪽 주장이다. 사실상 하청이 아닌 파견노동자 신분이라는 것이다. 파견노동자로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화해야 하지만, 이런 요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게 이제까지의 현실이었다.

노조가 설립을 준비하면서 수도권에 있는 한 매장의 채용 형태를 분석한 결과 정규직은 5%에 불과했다.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이 20%, 사내하청 노동자가 35%, 파견노동자가 40%에 달했다. 노조는 다른 매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임금은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조 조사 결과, 홈플러스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00만원이다. 2013년 하루 최저생계비 4860원을 기준으로 산출한 한달 최저임금 101만5000원보다 적다.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기까지는 이처럼 만연한 비정규직 고용과 그에 따른 열악한 노동·임금 현실에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대형 유통업체로 유통산업이 재편되면서 노동자들이 그쪽으로 몰려들게 됐고, 이에 따라 업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등 노동 불안정성이 심화됐다. 노조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더이상 참기 힘들다’는 노동자들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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