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VIP 맞이’에 혹사 당하는 홈플러스 지점 직원들

‘VIP 맞이’에 혹사 당하는 홈플러스 지점 직원들
밤까지 청소·페인트칠 시켜 실신하기도

홈플러스 부산 가야점의 정규직 직원 ㄱ씨는 지난 13일 오전 7시에 출근했다. 평소보다 1시간30분 빠른 출근은 열흘 전쯤 “‘VIP’라 불리는 본사(테스코아시아)의 최고경영자(CEO)가 15일 부산 가야점을 찾을 것”이라고 예고되면서 시작됐다. 전날 매출과 재고 조사, 가격표 점검, 판매·행사상품 진열, 물품 하역과 창고 적재까지…. 일상 업무는 오전 10시, 오후 3시 두 차례 업무지시를 받으면서 퇴근시간인 오후 5시까지 바쁘게 이어졌다.

“몸으로 더 힘든 일은 정작 그 때부터죠.” ㄱ씨는 오후 5시부터 ‘VIP 방문’ 준비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본사 고위임원이 방문할 동선에 따라 직원들이 ‘무빙워크(평지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고객·화물 엘리베이터, 대형냉장고를 수세미로 닦았다. 판매대 하단 틈새 먼지를 제거하고 걸레질도 했다.

저녁 6시에 시작된 식사는 30분 만에 마치고 잡무에 복귀했다. 오후 7시에 도착한 화물차 상품을 하역해 창고에 적재했고, 청소한 뒤에는 창고 내 안전마크·안전대의 페인트칠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하루 일이 끝난 것은 밤 1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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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방문’ 준비로 정신없던 14일에는 매장 직원 ㅅ씨가 저녁식사 중 관리자에게 불려가 일하다 오후 8시쯤 창고 뒤에서 음식이 식도에 막힌 상태로 쓰러져 발견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15일 본사 CEO의 방문은 취소됐지만 ㅅ씨는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17일 “흔히 VIP는 점장보다 높은 직급의 상사를 부르는 말”이라며 “VIP가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방문 1~2주 전부터 페인트칠, 청소, 판매대 재정비 등의 업무가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도 이 점포에서는 격무에 시달리던 직원이 수면 중 깨어나지 못하고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노조는 “연장근로수당은 거의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파견업체가 편법적으로 연장근로에 동원되는 일도 많다”며 “한 직원이 법원에 대표소송을 내면서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5개월간 한푼도 못받으면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야근시계’로 측정한 본인의 연장근로시간은 191.5시간에 달했다”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VIP 맞이가 홈플러스 특유의 군대식 업무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군대 예하 부대에 사단장이 방문할 때처럼 먼지 하나없이 청소·정리하고, 관물대의 각도 잡도록 했던 상명하복식 문화가 월 2~3회씩 VIP 방문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

기사 링크 http://goo.gl/L16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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