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화조합원 인터뷰-노조하는 거 알려진 다음날, 청심환 먹고 출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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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규노조는 간부 외에 조합원 명단을 일단 비공개하기 마련이다. 회사 측의 탈퇴 압박도 우려되고, 조합원들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회사에서 알게 되는 것을 극구 꺼린다.

지난 12일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홈플러스노조 조합원 정미화(53)씨는 홈플러스노조 마크가 예쁘게 박힌 조끼를 입고 나왔다. 그는 근처인 문래동에 있는 영등포점에서 일한다.

회사에서 알게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벌써 알고 있단다. 그는 “저번에 김기완 위원장이 기자회견하는데 같이 가서 피켓이랑 박스랑 들고 있는 바람에 회사에서 조합원인 것을 알게 됐어요”라고 선선히 답했다.

용기있고 적극적인 조합원인가 생각했는데 말이 이어졌다. “어찌나 겁이 나고 떨리던지 다음 날 청심환 먹고 출근했어요.”

며칠 뒤 보안직원이 정씨를 찾았다는 말에 그는 또 덜컥 놀랐다. 알고 보니 정씨가 활동하는 사내동호회에 대해 궁금한 게 있었던 것.

53세, 강원 영월 출생, 세 아이의 엄마이자 경제적 가장. 산전수전 다 겪은 정미화씨에게도 신규노조 가입은 떨리는 도전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정미화 조합원

홈플러스 노동조합 정미화 조합원이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53세, 세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 그녀는 왜 노조에 가입했나

누구나 그렇듯 정씨가 노조에 가입한 바탕엔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바꿔보려는 바람이 깔려 있다.

“난 5년 다녔는데 10년 다닌 언니들도 시급이 나랑 비슷해요. 1년에 200~300원 오르니 차이도 없어요. 학자금도 버겁고 병원이라도 가게 되면… 아파도 병가 못 내고 자기 연차 써서 병원 가요.”

남편은 사업이 잘 안 돼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고, 그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시집 간 큰 딸과 직장 다니는 작은 딸은 괜찮지만, 이제 12살인 늦둥이 막내의 학원비는 그에게 큰 부담이다. 급여 인상은 그의 가장 절실한 꿈이다.

입사 5년차인 정씨는 수산 코너에서 일하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오픈조와 오후에 출근하는 마감조가 교대근무한다. 다른 코너도 힘들지만, 수산도 일이 수월치 않다. 칼을 잡고 생선을 다듬어줘야 하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 바쁘게 오가야 한다. 손목 인대가 늘어나거나 칼에 베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특히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으라는 지시 때문에 칼을 내려치면서 순간적으로 눈은 손님을 보는 경우가 생겨 아찔할 때가 많다. 정씨는 손님에게 냄새가 심하다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오픈조는 개장 시간 전까지 두 파레트 정도 분량의 수산물을 옮겨서 일일이 포장 뜯고 다듬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을 ‘까대기’라고 부른다. ‘이커머스’라는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된 물품을 챙기는 것도 오픈조의 임무다. 평소 3명이 해도 여성들로서는 힘에 부치는데 근무조에 따라 혼자 하는 날도 있다.

이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 대부분 한의원과 병원을 오가는 ‘종합병원’ 신세다. 정씨는 “일하는 사람 대부분 손가락 마디가 튀어 나오고 인대나 관절이 안 좋아요. 의자도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서 있거나 걸으니 허리랑 다리, 발바닥도 아프고.”

홈플러스 노동조합 정미화 조합원

홈플러스 노동조합 정미화 조합원이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한 급여를 참고 힘든 일을 하는데 인력도 모자라 심신의 어려움이 더 커진다고 정씨는 말했다.

“전에는 13명이 일하던 코너인데 9명이 일해요. 그러다보니 오픈 업무를 혼자 하는 날도 있고요. 회사는 매출이 줄었다는데 일은 하나도 안 줄었거든요.”

들쑥날쑥한 근무시간도 고역이다. 오픈조는 7시 출근이고, 마감조는 3시 30분 출근인데 다달이 짜이는 스케줄에 따라 두 조를 수시로 오가며 일한다. 간혹 마감조를 한 다음 날 오픈조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 잡히기도 한다.

“마감조 12시쯤 마치고 집에 가서 씻고 아이 아침 준비하고 2시쯤 자요. 5시 반에 일어나 6시에는 무조건 출발해야 늦지 않아요.”

“생활이 나아지면 저절로 친절서비스 하게 되죠”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 선포 및 연장근로수당지급 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이 정미화씨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 선포 및 연장근로수당지급 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의 서러움을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이 정미화씨ⓒ이승빈 기자

노조가 생기면서 관리자들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장근무하고도 수당을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요즘은 ‘칼퇴근’이다. 직원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하며 차 대접하겠다는 관리자도 생겼다. 정씨는 수산코너의 정규직들은 모두 원래부터 열심히 일하고 잘 대해줬다고, 혹 인터뷰 때문에 불이익 가지 않겠냐고 연신 걱정했다.

정미화씨는 “우리가 로봇이 아니지 않냐”며 “친절한 서비스도 결국 마음에서 우러나야 되는데, 처우 좋아지고 생활이 나아지면 더 친절해지고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라지는 회사 분위기를 경험하며 조합원, 비조합원을 막론하고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녀처럼 대놓고 조합원이라고 하고 다니는 사람이 동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 짐작됐다.

영월에서 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정씨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마찌꼬바라 불리는 소규모 프레스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작은 트럭에서 떡볶이도 팔아봤다. 식당 일에, 파출부도 해봤다. 그는 “홈플러스에서 일하게 될 당시를 “다달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비록 세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 역할까지 하는 힘겨운 나날이지만 정씨는 낙천적이고 활동적이었다. 사내 봉사모임에서 영등포역 노숙자를 함께 돕기도 하고, 산악회에 들어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홈플러스가 사용자인 ‘직영 비정규직’ 정씨는 파견업체에 고용돼 점포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도 자주 밥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들은 ‘너는 직영이니 우리보다 나은 것’이라며 정씨를 부러워한다. 정씨는 “정규직, 비정규직, 직영, 파견 이런 거 없이 다 홈플러스에서 고용하면 될 텐데… 다들 노조 같이 해서 생활이 나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끝으로 정미화씨는 노조 가입을 망설이는 동료들에게 간절한 뜻을 전했다.

“이제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전국 홈플러스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분이 다 조합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동조합 있는 회사들처럼 우리도 학자금 혜택도 받고, 월급도 일한 만큼 받아야죠. 일하다 다쳐도 병원비를 받지 못하는데 이제는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우리의 권리 보장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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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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