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대형마트 불법관행 바로잡아야”
- 2013 04/16ㅣ주간경향 1021호
김기완씨(37)는 3년차 마트 노동자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의 재고 관리가 그가 하는 일이다. 2년 전 그는 홈플러스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처음에는 한 달 계약이었다. 한 달 뒤에는 다시 6개월 계약을 맺었다. 그 6개월이 지나고 또 다시 계약서를 썼다. 2년 동안 이런 방식으로 다섯 차례 계약을 갱신한 끝에 지금은 무기계약직 신분이다. 지난 3월 24일 이후 그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이 됐다. 홈플러스 노조는 3월 24일 노조 설립총회를 갖고, 25일에는 서울지방 고용노동청 남부지청에 설립신고를 했다. 사흘 뒤인 28일 오후 5시50분에 노조설립 신고증을 받았다. 홈플러스가 생긴 지 14년 만에 탄생한 노조다. 조합원은 홈플러스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휴무를 이용해 지역 홈플러스 매장 직원들을 만나고 돌아온 그를 지난 4월 3일 밤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조합원은 현재 몇 명인가
“설립 후 일부 언론에서 25명이라고 했는데 언론에서 추측한 것이다. 아무튼 설립 준비단계에서 수십명이 함께하겠다고 약속했고, 설립 후 사흘 만에 300명 넘게 가입했다.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조직화를 진행 중이다. 정확한 조합원 숫자는 밝힐 수 없다.”
노조설립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다행히 회사에서는 설립신고에 임박해서 알아차린 것 같다. 남부지청에서 조합 규약을 문제삼긴 했는데 큰 차질 없이 넘어갔다. 노조 설립 준비단계에서 이마트 노조가 신세계의 탄압을 받는 걸 봤다. 마음이 아팠지만 노조를 만들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먼저 고생한 분들에게 감사한다.”
이마트노조는 2012년 10월 29일 설립됐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당시 노조위원장과 회계감사를 해고했다. 노조 부위원장은 관리직에서 매장직원으로 강등됐다.
대형마트는 고용구조가 매우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홈플러스는 어떤가
“우선 직영과 비직영으로 나눌 수 있다. 직영은 다시 직영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비직영은 협력업체 파견직원들이다. 홈플러스 직영 노동자는 2만여명이다. 그 중 6000여명이 정규직이고 나머지 1만4000여명이 비정규직이다. 내가 일하는 마트(홈플러스 영등포점)의 경우 정규직은 40여명이고 직영 비정규직이 160~170명이다. 나머지 700~800명은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홈플러스에는 열몇 가지 형태의 고용구조로 돼 있어 우리도 정확하게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어떤 직원의 경우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돼 일하는데, 이 파견업체는 홈플러스의 여러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직원이 A회사와 B회사의 일을 다 보기도 한다. 너무 희한한 구조라 일일이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아주 복잡해서 회사에서도 제대로 된 자료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내 대형마트에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들이 일하고 있다. 입점 납품업체 협력사원,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공급되는 용역사원, 시간제 아르바이트 종사자, 본사가 고용하는 무기계약직 등이 섞여 있다. 대형마트 내 고용실태는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조사된 적이 없다.
직영 비정규직인 경우 채용 과정이 어떤 방식인가
“채용공고를 통해 입사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결원이 생기면 직원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검증을 받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신규인력을 충원하는 건데, 노무관리의 일환이라고 본다. 일단 채용되면 몇 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수습비정규직이라는 게 있다. 6개월간의 수습비정규직을 거쳐야 ‘정식’ 비정규직이 된다. 이런 게 있다는 건 나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수습비정규직 기간에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퍼지기 때문에 힘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떠난다.”
근로조건은 어떤가
“직영 비정규직은 계약을 하루 4.5시간, 5.5시간, 7.5시간 단위로 한다. 8시간 계약을 하지 않는 거다. 수당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식이다. 대부분 연장근무를 1∼2시간 더 하고, 바쁠 때는 5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한다. 연장근무 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명절 같은 특별기간에는 주당 40~50시간 연장근무를 한다. 정규직이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이직률이 높기 때문에 빈 자리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채우기도 하는데, 정규직이 됐으니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더 많은 일을 시킨다.”
14년 동안 노조가 생기지 못했던 이유는?
“노조 만들기가 쉽지 않다. 대형마트의 경우는 2년 근무하고 무기계약직이 될 때까지 쫓겨나지 않으려면 회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계약 갱신을 위해 면담을 하면 ‘계약을 갱신할지 말지 아직 판단을 못했다’ ‘길게 일할 생각이 있느냐’ 등 신상 관련 질문이 나오는데 당사자 입장에선 아주 불안해진다. 문제제기를 하려는 징후가 보이거나 연장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방출되는 경우도 있다. 불이익을 감당하려는 용기가 없으면 노조 설립을 생각하기 어렵다. 홈플러스는 애초 삼성물산과 테스코가 합작해 시작했고 2011년에 삼성물산이 손을 뗐지만 고위임원들은 삼성 출신이 많아 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남아 있다. 고위임원이 매장을 방문한다고 하면 직원들이 며칠 전부터 대대적으로 청소에 동원된다. 나도 사흘 동안 동료들과 함께 화물엘리베이터를 수세미로 닦은 적이 있다. 사정이 이런데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한다? 어렵다.”
노조 설립 후 회사측 반응은 어떤가
“아직 회사 간부들과는 만난 적이 없다. 회사가 여러 경로로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 중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노조 설립 후 직원들에게 정시 퇴근을 지시한다든지 불필요한 청소업무를 시키지 않는다든지 하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 비합리적인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가 노조가 생기니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노조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은 뭔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가.
“이마트의 경우 불법파견이 이슈화하면서 정규직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단순 정규직 전환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연장수당 문제 등 불법적인 관행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유통업계의 신생 노동조합이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노조나 전문가들이 연구와 조사를 통해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조합원들이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직장,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직장으로 바꿔야 한다. 회사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나온다면 큰 진통 없이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